[리들/헤르] Have You Ever (단 한 번이라도) 20 : 딸기 서프라이즈와 오래전 잊혀진 기억들
[리들/헤르] 단 한 번이라도 20 : 딸기 서프라이즈와 오래전 잊혀진 기억들
제 20장. 딸기 서프라이즈와 오래전 잊혀진 기억들
(부제: 단 한 번이라도 선택권이 주어져 본 적이 있는가)
1944년 12월 4일 토요일
오전 10시 31분
"언니 오늘 뭐한다고 했었지?" '필요의 방'이 현재 만들어낸 밀실에 놓인 푹신한 의자에 편안히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던 지니가 헤르미온느에게 물었다.
"나..." 헤르미온느가 방 벽들 중 한 쪽에 화사하게 설치된 우아한 전신 거울 앞에 서서 멈칫했다. "음..." 이 사이로 두 개의 탄탄한 헤어밴드를 물고서, 그녀가 자신의 초콜렛빛 갈색 부드러운 고수머리를 두 갈래로 프랑스풍으로 땋아 늘어뜨렸다. 그런 후 각 땋은 머리 끝을 묶었고, 얼굴 주변엔 곱슬거리는 몇 가닥 컬들만 삐져나와 있었다. "... 호그스미드에 가."
"아, 맞다, 호그스미드." 지니가 유난히 부루퉁한 기분으로 어둡게 중얼거렸다.
헤르미온느가 자신의 복장을 비평적인 눈으로 훑어보았다. 거의 무릎까지 오는 털 달린 스노우 부츠에, 따스하지만 매력적인 40년대 스타일의 스커트, 장미색 터틀넥 스웨터, 그리고 그녀의 파란색과 브론즈색으로 수놓아진 어두운 래번클로 망토까지.
헤르미온느는 마을에 도착하면 의심할 여지없이 맞이하게 될 살을 에이는 겨울 공기를 물리칠 간단한 온기 마법을 부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헤르미온느의 눈이 유달리 황량한 '필요의 방'을 둘러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야, 진. 아무도 못봤니? 해리는 어젯밤 늦게까지 어둠의 마법 모임이 있다고 했었어. 내말 무슨 뜻인지 알지? 아무튼 그래도 론이랑, 라브, 드레이코는 갈 거라고 했었는데."
"오, 무슨 뜻인지 알지." 지니가 신랄한 어조로 맞장구를 쳤다. "그 호그와트에 상주하는 흥겨운 밴드인 '죽자'들이 새벽까지 파티를 했더랬지. 내 말 무슨 뜻인지 알지? 해리 오빠는 새벽 3시에 슬리데린 공동휴게실로 기어들어와서는 아직도 안 일어나고 있어. 물론 오빠를 비난하는 건 아냐. 나머지 인간들은 내가 언니에게 한마디로 요약해 줄게." 지니가 그녀의 손에 들려있던 마녀 보그지 1944년 12월 판을 휘리릭 넘겼다. 펼쳐진 곳에 써있는 글씨는 퀴디치 였다.
헤르미온느의 입이 탁 벌어졌다. 그녀가 어깨 너머로 서리로 뒤덮인 창문을 흘긋 보았다. 창문 밖으로는 마치 이상한 나라의 겨울에서 날아온 듯 보이는 함박눈이 매섭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이런 날씨에 연습을 한다고?"
맙소사, 스포츠가 뭐라고 인간을 이렇게까지 만드나...
"응. 아브락사스 주장이 간만에 뇌를 써서 슬리데린 팀은 주말에 운동장 예약을 안했길 천만다행이지. 저런 날씨에 나는 게 얼마나 못할 짓인데. 그치만 그리핀도르랑 후플푸프는 오늘 예약을 했거든. 그래서 론 오빠랑 라벤더 언니 둘다 못 올 거야." 지니가 히죽 웃었다. "그리고 몰이꾼 드레이코는 자기 생각만큼 잘하고 있진 않았는지, 아브 주장이 퀴디치 락커에서 지금 현재 꾸중 중이시래네. 주워들은 바로는. 그래서 오늘 오후 내내 자리를 비우게 됐고... 난, 언니도 알다시피, 그 바보같은 식물학 조과제를 스테판 스팅커핑크스인 뭔지 하는 웃기는 이름의 애랑 해야 해.."
"쉬림퍼딩크스" 헤르미온느가 망토를 두르면서 무심코 이름을 고쳐주었다.
"뭐든지 간에" 지니의 갈색 눈이 잠시 허공을 응시했다. 그녀가 마녀 보그지의 초록과 빨간색 표지를 무심코 만지작거리더니, 마치 신통한 생각이라도 떠올랐다는 듯,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며 헤르미온느를 가리켰다. "언니 도미니크 데이비스랑 같이 가지 그래? 래번클로는 오늘 퀴디치 연습 없거든. 데이비스가 언니한테 관심 있다고 소문 쫙 났던데. 솔직히, 미온느 언니, 그 정도면 괜찮잖아. 래번클로 팀 주장에다, 그만한 인물이면 확실히 '기대 이상' 등급은 되는 휴일 야회 무도회 파트너로 아주 제격이지-"
"실은" 헤르미온느가 운을 떼고는, 거울에서 눈을 돌리고, 줄무늬 래번클로 목도리를 목에 두른 후에, 청동색 장갑을 꼈다. "나 이미 다른 사람이랑 가기로 했어. 내 말은, 호그스미드 말야."
헤르미온느가 장갑을 다 낀 후에, 끝이 청동색으로 작게 마무리된 진청색 겨울 모자를 썼다. 그녀가 프랑스 풍으로 땋아내린 머리를 뒤로 넘기며, 거울 속에 비친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는 지니를 슬쩍 쳐다보았다. 신속한 퇴장이 최선의 길이라고 결정한 헤르미온느는 거울에 비친 지니의 빨간머리에 대고 가능한 한 쾌활하게 손을 흔들며 문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그녀가 도달하기 직전에, 지니가 모호한 말투로 취조했다. "그자가 가자고 했어, 언니가 가자고 했어?"
헤르미온느의 발이 마지못해 방문을 조금 앞에 두고 멈췄다. "내가 했어." 그녀가 정직하게 대답하며, 홱 뒤를 돌아 지니를 쳐다보았다. "리들은 허가서에 서명해 줄 부모나 다른 보호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한번도, 단 한번도 호그스미드엘 가본 적이 없어."
지니가 코웃음을 쳤다. "오, 불쌍하기도 해라. 그치?" 지니가 갑자기 새로 솟은 힘으로 마녀 보그지를 옆으로 팽개치며, 유연하게 일어서서, 헤르미온느의 어깨를 꽉 움켜쥐었다.
지니가 그녀의 호그와트 1학년 생활을 살아있는 악몽으로 만들며 자신을 조종했던 남자인, 볼드모트 경에 대해 얘기할 때만 사용하는 예의 그 어둡고 신랄한 어조로 말했다. "단 1분 이라도 그자가 진짜 거기에 가보지 않았을 거라고는 생각 마, 미온느 언니! 그자가 그 모든 자기 어둠의 마법 활동과 죽음을 먹는 자 집회를 위해서 교칙을 위반하고 분명 거기에 갔을 거라고 난 장담해. 내기해도 좋아!"
헤르미온느가 한숨을 쉬고는 그녀의 팔을 지니에게 두르며 그녀의 손을 지니의 어깨 위에 올렸다. "지네브라, 며칠 전 내가 특별히 어떤 슬리데린 후계자가 걸린, 어떤 저주에 관해서, 그 저주에 관한 계획을 돕기로 하는 대신, 너희 모두에게 부탁했던 거 기억하니?"
자신의 정식 이름을 들은 지니가 움찔했지만, 그렇다고 그녀가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알아, 알아, 헤르미온느 언니. 간섭하지 말아달라는 거. 그치만 딱 이번, 이번 한번만 이 말 한마디만 할게. 그런 다음 멀린의 무덤에 대고 맹세코, 앞으로 절대 다시는 벙긋하지 않을 게. 언니의 볼-리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절대, 절대 다시는 찍 소리도 안할게. 맹세해."
어쩐지, 헤르미온느는 지니의 마지막 말을 믿기가 다소 힘들었지만, 그래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 빨간머리의 목소리가 필사적이고, 억누를 수 없는 분위기와 여세를 몰아, 급격하게 낮아졌다. "미온느 언니, 난 언니는 감히 상상도 못하는 그자의 면을 보았어. 난 그자의 훨씬 더 어두운 면을 봤었어. 난 순진한 사람의 영혼들을 야금야금 먹어치우는 순수한 절대 악을 느꼈어-" 지니의 평소의 독단적인 목소리가 살짝 흔들렸지만, 그녀가 다시금 힘들게 숨을 삼키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자의 악은 사람들을 결국 텅빈 유령만 남을 때까지 영혼을 먹어치운다구."
"나 기억하고 있어, 진." 헤르미온느가 지니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기울여 기댔다. 그들의 팔은 여전히 서로 엉킨 채였다. "내가 기억한다는 거 너도 알잖아." 헤르미온느의 눈이 그 기억에 슬퍼졌다. 어떻게 그 일기장이, 그렇게 오래, 지니에게 악영향을 미쳤는지, 헤르미온느는 결단코 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 일기장의 개념엔... 그 개념엔 뭔가가 있었다...
헤르미온느가 잠시 인상을 찡그렸지만, 그녀의 마음은 인디 500 자동차 경주대회의 레이스처럼 질주하고 있었다. 천천히, 생각에 잠겨, 어디에서 이 영감이 떠올랐는지 그다지 확실친 않았지만, 그녀가 숙고했다. "하지만 그 다이어리가 작동했을 때 실제로 나왔던 자가 리들이었을까, 진, 아니면 볼드모트 경이었을까?"
지니가 버럭 팔을 풀고 헤르미온느에게서 물러났다. 그녀의 갈색 눈이 그 갈색머리 소녀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유심히 살폈다. 마치 그 2년 연속 여학생 회장이, 지니와 모든 사람들은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을 못본다는 걸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눈초리였다. "있지, 미온느 언니, 내가 미친 건진 모르지만, 난 늘 톰 리들과 볼드모트 경이 언제나 같은 사람이라는 다소 유명한 주장이 맞다고 생각해 왔거든."
필요의 방 문의 부드럽고, 서늘한 손잡이를 쥐던 헤르미온느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그녀는 이전엔 단 한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니 말이 맞았다. 그들은 같은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나?
오전 10시 56분
대연회장의 바깥 계단을 총총 내려오면서, 헤르미온느는 여전히 지니의 작별 인사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리들은 볼드모트 경이었다.... 결국엔, 애초에 그 이름을 창조해 낸 사람이 바로 그였으니까. 두 사람이 유일무이한 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고, 철저히 엉터리였다....
하지만 아직, 아무리 그녀가 알고 있는 볼드모트 경이 잔인하고, 위험하고, 사악하고, 살인을 일삼는다 해도, 여태까지도 그녀는 톰 리들이 그녀에게 목소리를 올리는 것 보다 더한 짓을 할 날을 기다리기만 할 따름이었다. 심지어 리들이 목소리를 높인 것도 딱 한번, 그녀가 그의 등 뒤에서 지하 파티를 조직해서 운영하고 있다는 걸 그가 알아냈을 때 뿐이었다. 만약 거꾸로 헤르미온느가 그런 일을 당했다면, 그녀는 분명 그 자리에서 그에게 주문을 날렸을텐데.
...그리고 리들은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도 했었다. 한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 씩이나.
그 모든 것이 연기일 확률도 있다고, 그녀는 스스로 조심스레 상기했다. 그러다 어차피 지금 어떤 명백한 결론도 얻지 못할 텐데, 계속해서 혼자 왔다갔다 하며 논쟁을 벌이는데 지치고 말았다.
그자가 얼마나 철저하게 그럴 듯한 스토리를 자아내서 사람들을 능숙하게 잘 속이는지 너도 잘 알잖아.
하지만, 정말로 솔직히, 그녀가 생각했다-그러다가 수업시간이나 점심 때 마주친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도미니크 데이비스와 다른 다섯 명 가량의 래번클로 7학년 생들이 안뜰로 나가는 문에 서서 그녀에게 그쪽으로 오라고 손을 흔드는 걸 본 후에, 되 흔들어주었다.- 그녀는 리들이 이전 목요일 밤에 그녀에게 했던 모든 말들이, 그녀가 그에게 호그스미드에 같이 가자고 했던 날 밤의 행동들이 전부 다 연기였다고는 도무지 생각이 들지가 않았다.
아니면, 무슨 미친 이유에선지, 그녀는 그저 필사적으로 그가 그녀에게 진심을 얘기한 거라고 믿고 싶었다.
"헤르미온느!" 데이비스가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열광적으로 인사를 건넸다. 헤르미온느는 그가 얼마나 많이 그의 손자인 로저와 닮았는지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를 볼 때면 매번 받는 인상이었다. "호그스미드에 가는구나. 정말 잘됐다!"
"오늘 크리스마스 선물 쇼핑을 전부 마쳐야 한다는 것만 빼면 정말 잘됐지." 헤르미온느가 이렇게 응수하고는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걸 깨닫곤 신음했다. 빠르게 다가오는 '휴일 야회 무도회'(그 모든 엄청난 준비를 포함해서) 때문에, 이번 주가 거의 분명 그녀가 크리스마스 전에 한가로이 맞을 수 있는 마지막 호그스미드 주말은 고사하고, 한가로운 마지막 주말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눈 오나?"
데이비스가 살짝 왼쪽으로 고개를 틀어서 안뜰문 밖을 바라보았다. "아니, 잠시 멈춘 것 같아." 그가 이렇게 보고할 무렵... 이끄는 말이 없는 마차 부대가 도착했다... 말이 없는, 적어도, 삶의 시련들에 아직 때묻지 않은 학생들의 눈에는. 헤르미온느가 이렇게 생각하며 한 마리의 세스트랄이 앞에 가는 마차를 따라잡기 위해 속력을 내는 걸 지켜보았다.
"뒤 라크가 어제 약물학 수업시간에 네 친구들이 이번 주에 아무도 호그스미드에 갈 수 없게 되었다고 얼핏 말을 흘리던데..." 그 래번클로 생이 다정하게 싱긋 웃자, 그 미소가 그의 의심할 나위 없이 잘생긴, 금발의 푸른 눈을 한 얼굴을 더 밝혀 주었다. "네가 굉장히 심심하다면, 우리 같은 녀석들과 같이 합석해도 우린 언제나 환영이야."
"알아, 도미니크." 헤르미온느가 미소를 지었다. 여섯 명의 건장하고 훤칠하게 큰 래번클로 퀴디치 선수들 옆에 서있으려니, 그녀는 문득 인간들이 가득 서 있는 방안으로 기어 들어오는 개미가 필시 어떤 심정일지 깨달았다. 지금 그녀는 딱 그 개미였던 것이다. " 고마워, 진심으로. 하지만 오늘 내가 해결해야할 공적인 일이 좀 있어서, 미안."
댕!...댕!...댕!...
데이비스가 그녀에게 정확히 그 '공적인 일'이 뭔지 물어보기 전에, 그 해묵었으면서도 놀랍게도 원기 왕성한 대연회장의 대형 괘종 시계가 11시 종을 쳤다. 그 낮게 깔려 울려 퍼지는 소리는 근처의 왁자지껄 떠드는 학생들 너머로 까지 들릴 수 있었다.
바야흐로, 눈 덮인 안뜰 바깥 정중앙 로비는 다양한 옷을 입은, 다양한 나이와 몸집의 여자 마법사들과, 남자 마법사들로 터질 듯 붐볐다. 어쩐지, 그러나, 헤르미온느는 그녀가 주장을 포함한 한 무리의 7학년 퀴디치 선수들과 얘기를 나누고 서있다면, 톰 리들이 결코 다가오지 않을 거라는 의심이 들었다.
톰 리들은 그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았다.
그녀가 실망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작별인사를 하는 데이비스에게 쾌활하게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 금발소년은 다른 다섯 래번클로 생들과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그 그룹은 안뜰 문에서 비교적 짧은 거리에서 에스코트를 기다리며 줄지어 서있는 몇 명의 꺄르륵 웃는 소녀들을 쉽게 고를 수 있었다.
헤르미온느가, 문 밖을 마지막으로 흘긋 보면서, 주의해서 복잡한 공간의 끝에서 끝까지 톰 리들의 키가 큰 어두운 머리를 찾아 샅샅히 뒤졌다.
그녀는 아무 것도 찾지 못했다.
다행히, 지난 밤 그녀가 초대하면서 했던 정확한 말들이 마침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 "11시에 대연회장 바깥 층계에서 나랑 만날래?"
맞다, 층계!
능숙하게 손가락 사이로 지팡이를 두 번 휙휙 돌리며, 헤르미온느가 전속력으로 다양한 무리의 학생들 틈을 비집고 빠져나왔다. 놀랍게도 숨이 차서 헉헉대게 된 것만 빼고는, 그녀가 상처 없이 그 군중들 틈을 삐져나와 문제의 층계 바로 앞에 당도하자, 지팡이를 주머니에 도로 쑤셔넣었다. 운이 좋았네.
여전히 리들의 모습이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자, 헤르미온느가 일곱 번 째 계단까지 올라가서 끝에 대충 걸터앉았다. 또다시 로비 밑까지 쑥 들러보아도 그를 찾는데 실패했을 때, 의심이, 티끌 같은 크기이지만, 여전히 씨앗이기는 한, 의심의 씨앗이 그녀의 뱃속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리들이 대책없이 늦는 것일까, 그저 헤르미온느가 올 학기 초 내내 나쁜 버릇처럼 시간을 준수하지 않는 데에 대한 역지사지 정신으로? 혹시 완전히 약속을 잊어버렸나? 언젠가라도 나타나기는 할까?
11명의 학생들이 더 지나간 후에, 긴 그림자가 그녀의 오른쪽 어깨 너머로 나타나면서, 그녀의 의심이 기쁘게도 잘못된 것이라는 걸 증명해 주었다. 그녀가 뒤로 고개를 기울였다. 그녀의 안도의 눈빛이 톰 리들의 극도로 피곤해 보이는 눈빛과 만났다.
좋아, 그래 어쩌면 그녀는 리들이 나타난 것에 아주 살짝은 놀라긴 했다. 그러나, 그녀는 리들의 낡았지만 두터운 어두운 수풀빛 녹색 망토 자락 속으로 살짝 비치는 그의 교복을 봤을 땐 놀라지 않았다. 그는 저 교복을 몸에 풀로 붙이기라도 한 것일까?
"안녕" 그녀가 그에게 위에 서있는 그의 위치에서 보면 거꾸로 보이긴 할지라도, 환한 미소를 지어주며 인사를 건넸다. 그녀가 그의 바로 옆에서 타오르는 밝은 횃불 빛에 눈을 찡그렸다. "준비됐어?"
리들이 단순히 안뜰 문쪽으로 고개를 기울여 보였다. "마차 곧 출발하겠다. 가자."
"네. 네. 지금 갑니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낮게 투덜거렸다. 리들의 첫 마디에서, 그녀는 그가 평소보다 오늘 유난히 더 몸을 사리고 있다는 야릇한 인상을 받고 있었다.
망토 뒤를 툭툭 털면서, 헤르미온느가 남은 대연회장 계단을 리들을 따라 걸어내려 갔다. 계단 끝에는 눈덮인 회색 겨울 아침이 반기고 있었다. 얼음장 같은 겨울 돌풍이 그녀의 망토 자락을 사정없이 뚫고 들어왔고, 그녀가 발걸음을 빨리해서, 일부러 가장 끝에 서있는 마차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거의 얼어붙은 마차 문을 홱 제껴 열며, 그녀가 안으로 힘차게 훌쩍 들어갔다.
부드럽고, 푹신하고, 따스한 자줏빛 좌석에 풀쩍 앉아서, 그녀는 리들이 곧바로 올라 탈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는 아직도 몇 발자국을 남겨두고 있었다. 약간 고개를 숙인 채, 그의 양 팔이 차가운 공기를 막기 위해 자신의 몸통을 감싸고 있었다. 또한 그건 마치... 자기방어? 자세 같았다. 그의 발걸음 역시 평소보다 느렸고, 걸음 하나하나 마다 신중히 계산된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뭔가 주저하는 것도 같았다.
아냐. 헤르미온느가 그녀의 상상력이 너무 앞서갔다고 결정하며 고개를 흔들었다. 톰 리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절대 주저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리들이 막 마차가 떠나기 직전 순간에 마차에 올랐다.
마차가 급작스럽게 덜컹 하더니 앞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헤르미온느는 리들이 또한 유별나게 조용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호그스미드로 가는 짧은 여정동안, 그의 지친 속눈썹이 마차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 때때로 아래로 길게 드리워졌지만, 그는 그의 바로 앞에 앉은 헤르미온느의 흐린 장밋빛 스웨터의 한 곳에 그의 공허한 시선을 집중하는 방법으로 제법 성공적으로 눈을 계속 뜨고 있었다. 그는, 그러나, 그의 두 눈 아래에 작지만 몹시도 뚜렷하게 자리잡은 다크 서클을 숨길 수는 없었다.
헤르미온느의 뱃속이 가라앉았다. 이건, 어쨌거나, 그녀의 앞에 앉은 이 소년이 죽음을 먹는자의 우두머리일 거라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던 것이다. 만일 해리가 어젯밤 모임 후에 아직도 자고 있다면, 그렇다면 물론 리들 역시 침대에서 시체처럼 자고 있어야 할 상태일 테니까... 그녀는 애초에 그가 호그스미드에 가기로 동의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기왕, 이렇게 된 바에야, 이건 그녀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볼 수 있는 완벽한 기회라는 걸 헤르미온느는 깨달았다. 그녀가 얼어붙은 창 밖으로 펼쳐지는 온통 새하얀 풍경을 감상하는 걸 그만두고, 눈을 들어 그 슬리데린 후계자를 마주하며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어제 늦게까지 못잤나봐?"
리들의 눈이 헤르미온느의 얼굴로 펄럭 올라갔다. 평소처럼 완전히 읽을 수 없는 눈빛이었다. "그렇다고 해두자." 그가 무심하고 싸늘한 어조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더 이상 상세한 설명없이.
어우, 야, 톰, 너 그것보다는 더 잘할 수 있잖아.
헤르미온느가 짐짓 그 대답에 만족한 척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창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가 날카롭게 다시 리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흘긋 보았다. "왜?"
리들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그녀의 이전의 그와의 경험에 비추어봤을 땐 그나마 훨씬 덜 무심한 축에 속했다. 그러다가 작고 반쯤 건성인 피식하는 미소가 그의 얼굴에 나타났다. "넌 포기를 모르는구나, 그렇지?" 이렇게 묻는 그의 목소리는 조용하고 지친 음색이었다. 그 문장은 질문이라기보다는 거의 단정에 더 가까웠다. 정말로 그녀의 답변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라는 것처럼.
그가 무심히 그의 두 검은색 장갑을 벗더니, 무심히 그 장갑을 그의 손가락 사이에 끼고 비비기 시작했다. 불현듯, 그가 말했다. "네가 나에게 준 책을 읽었어." 그의 폭풍 안개빛 눈이 자신의 장갑을 떠나 헤르미온느의 반응을 쟀다.
헤르미온느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약올리는 미소가 피어올랐고, 그녀는 죽음을 먹는자 모임에 대한 미니 탐문은 미루기로 마음먹었다.... 당분간 동안만. "그래, 네가 꿈꾸던 모든 것이 들어있던? 아니면 더 굉장하던?" 그녀가 살짝 미소를 머금으며 물었다.
리들이 피식 비죽이듯 웃고는 마차에 달린 창밖을 바라보았다.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었어. 네가 묻는 게 그거라면."
황야를 뒤덮은 시골 풍경과 눈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그들이 호그스미드에 당도했음을 알렸다. 리들이 다시 장갑을 손에 끼기 시작하면서, 다소 딱딱하게 덧붙였다. "뒤 라크는 어디 있지, 네페르타리? 네 나머지 수하들인, 웨스트 남매와 에반스, 브라운은? 그 애들이 널 외로이 혼자 남겨두었을 리가 없을텐데."
헤르미온느의 두 눈썹이 믿을 수 없다는 듯 치켜 올라갔다.
멀린 맙소사, 난 널 위해 허가서를 받아다 줬는데, 이게 내가 받는 댓가란 말야? 진짜로.
부아가 나서, 그녀가 눈을 굴리며 기도했다. 오늘이 톰 리들이 비딱선을 타는 싸가지 날이 아니기를.
"첫째, 리들" 그녀가 톡 쏘며 시작했다. "그애들은 내 수하가 아냐. 그애들은 내 친구야. 그 둘엔 굉장한 차이가 있단다. 둘째, 난 충분히 '외로이 혼자 남겨질' 수 있어. 왜냐하면 난 네 견해로 보자면 믿을 수 없고도 진기한, 고독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거든. 난 거의 어느 곳에서나, 거의 어느 시간에나, 거의 어느 사람하고도, 거의 어느 상황에서든,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다고."
좋아, 뭐 좀 과장을 하긴 했지만. 하지만 리들이 그 사실을 알 필요는 없지!
"셋째" 그녀가 리들이 달리 한 마디라도 내뱉기 전에, 힘차게 계속했다. 그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고, 만일 그들이 정말 친구였다면, 그에게 아는 척 그녀의 손가락 하나를 흔들 뻔 했다. "드레이코, 론, 라벤더가 퀴디치 연습만 없었어도, 해리가 늦잠을 자지만 않았어도, 지니가 급한 식물학 조과제만 없었어도, 걔들은 분명 지금 이 자리에 나랑 같이 있었을 거야."
그녀가 숨을 쉬기 위해 말을 멈췄다. 갑자기 리들이 그녀의 고함을 어떻게 받아들이려나, 무슨 짓을 하려나, 걱정이 되면서, 그녀의 가슴 속에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잘했다. 그녀가 오후를 제대로 망친 것일 지도 몰랐다. 그래, 지금 그걸 걱정할 번지냐, 헤르미온느.
그치만 그가 먼저 시작했잖아! 그녀의 마음 한 구석이 유치하게 칭얼거렸다.
그녀가 기대하지 않았던 한 가지는, 그러나, 리들의 입술 언저리가 또다시 피식 하는 미소와 함께 올라가는 것이었다. "저봐."
(역주) So there. : 당도했다/ 다왔다 라는 뜻과 함께, 저봐/그럴 줄 알았다 등의 뜻으로도 통하는 말)
뭐? 그녀가 이렇게 생각할 무렵, 마차가 덜컹 멈춰섰고 문이 찰칵 열렸다. 리들이 우아하게 마차를 빠져나가는 동안, 그녀의 두 눈이 뭔가 신랄한 대꾸를 생각해내려고 찰나적으로 가늘어졌다. '저봐?' -아아아. 그의 두 단어가 내뱉어진 기막힌 타이밍을 깨닫고는 그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입술 사이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서둘러, 그녀가 망토를 단단히 그러쥐며, 마차 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살을 에이는 듯한 바람이 조금도 반갑지가 않았다. 리들이 마차 옆에 무심코 몸을 기대고 있었다. 커다란 함박눈이 그의 어두운 머리칼 위로 어느새 내려앉기 시작했다.
"한방 먹었다, 리들. 한방 먹었어." 헤르미온느가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띈 채 콧등을 찡긋해 보였다. "나 당해도 쌌던 것 같다, 그치?"
"고마워." 그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마차에서 내린 학생 무리들의 점점 떠들썩해지는 함성들 너머로 들릴 수 있도록 그의 목소리가 살짝 커졌다. "그리고, 맞아. 넌 당해도 쌌어."
전혀 예기치 않게, 톰 리들이 마차에 기대고 서있던 곳에서 거의 무심한 듯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헤르미온느가 완전히 어안이 벙벙해져서 그의 장갑낀 펴진 손을 적어도 5초 동안 압을 딱 벌리고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입이 벌어졌다가... 다시 확 닫혔다. 그리고 그녀가 그의 손을 잡고 균형을 잡으며 마차 밖을 빠져나와 훌쩍 땅으로 뛰어내렸다.
그녀가 재빨리 그의 손을 놓았다. "고마워."
헤르미온느가 그의... 매너에(그렇게 불러도 되나?) 몹시 놀란 것에 비하면 제법 그 충격을 잘 감춘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그녀의 마음엔 한 치의 의심도 들지 않았다. 오늘 오후가 흥미로운 시간이 될 것이라는 것에.
오후 02시 23분
"그리고 저기, 저기 오른 쪽에 있는 건 '혓바닥 비틀기 태피'야" 헤르미온느가 톰 리들이 그의 장갑 낀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여러 다양한 형태의 포장된 사탕들 중 하나를 가리켰다. 한 줄기 강한 돌풍이 이 작은 마을을 뚫고 휘몰아치자, 그녀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날씨 때문이었는지, 그 태피가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생각 때문인지, 헤르미온느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근데, 진짜 그건 먹지 마."
리들이 그의 손에 들린 사탕 뭉치를 의심스러운 눈으로 살폈다. "네가 위험을 무릎써야 한다면, 넌 뭘 택할건데?"
헤르미온느가 눈썹을 찌푸리며, 심각하게 그의 질문을 고려해보았다. 쓰리 브룸스틱스 안에서부터 이따금씩 웅성이는 대화들과 외침이 들려와서 그녀의 집중을 철저히 방해했다. "음, 솔직히 인정하자면, 나 이 중 대부분의 사탕은 정말 좋아해. 맞아, 우습지?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뭐냐하면..."
헤르미온느가 리들 옆으로 바짝 다가갔다. 지난 몇 주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감히 한번이라도 도전했거나, 바랐던 거리보다도 더 가까이 서서, 헤르미온느가 그의 장갑 낀 손으로 머리를 숙였다. 그녀가 가볍게 그녀가 좋아하는 사탕을 찾아 고르는 동안, 그녀의 곱슬거리는 머리칼 몇가닥이 얼굴로 떨어졌다.
잠깐. 그녀가 방금 '바랐다' 고 생각한 건가?
"으음... 이 거야." 헤르미온느가 승리에 차서 고개를 들고, 밝게 포장된 나선형 모양의 사탕을 들어올렸다.
리들의 눈이 그 사탕을 수상쩍게 살피며, 나머지 사탕들을 그가 들고 있던 봉투 속으로 미끄러뜨렸다. 한 쪽에 화려한 흘림체로 쓰인 허니듀크 라는 글씨가 박힌 작고 빨간 종이 파우치였다.
헤르미온느가 그 슬리데린 후계자에게 분홍색 종이로 포장된 꽈배기 모양의 태피를 건넸다.
"그게 뭔데?" 그가 조심스럽게 그 사탕을 주시하며, 신중하게 물었다.
"'딸기 서프라이즈'라고 불리는 사탕이야. 딸기 맛이거든." 헤르미온느가 눈쌓인 대로변을 따라 그의 옆에서 걷기 시작했다.
그들의 발이 한 걸음씩 저벅저벅 소리를 내며 걸어가면서, 신나게 까불며 노는 3학년 아이들 무리를 지나쳤다. 환하지만 구름이 많았단 아침은 어느새 오후로 들어서서 어둑해지고 있었다.
"이름 한번 독창적으로 붙였다." 헤르미온느가 한 장난꾸러기가 던진 눈덩이를 간신히 피하자, 그가 비죽 웃고는 말했다. "근데 서프라이즈는 왜?"
헤르미온느가 위엄을 차리며 망토를 툭툭 펴고는, 그 눈덩이를 던진 진범이, 그녀가 원래 생각했던 어느 장난꾸러기 아이가 아니라, 도니미크 데이비스인 걸 발견하고는 어깨너머로 그를 팍 째려보았다. 다시 리들을 바라보며, 그녀가 그의 비죽이는 표정을 따라했다. "그거야 서프라이즈니까지, 리들. 네가 무슨 일을 당할지 절대 알 수가 없거든."
또다른 눈보라가 몰아쳐, 그들 앞을 춤추듯 지나갔다. 그 바람에 헤르미온느의 땋은 머리 하나가 실제로 리들의 어깨를 휙 쳤다. 소리내 웃으며, 헤르미온느가 그녀의 모자를 한 손으로 눌러 쥐면서, 그 땋은 머리채를 다른 쪽과 같이 모아서 일부를 망토 안으로 밀어 넣었다.
리들은 그러나, 조용했다. 유일하게 들리는 다른 소음이라고는 그들 뒤에 난 거리에서 전면전으로 펼쳐지고 있는 눈싸움 전쟁터에서 들려오는 와아 하는 함성들 뿐이었다. 그 함성마저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희미해지기 시작했고, 헤르미온느는 솔직히 마을의 난리천지인 눈싸움을 뒤로 하고 떠나온 것이 반가웠다.
"무슨 일을 하는데?" 리들이 그 꽈배기 태피를 다시한번 들어 올리며, 마침내 물었다.
난데없이, 헤르미온느의 경쟁 심리가 열렬히 고개를 내밀었다. "흠, 글쎄다." 그녀가 꽤 천진난만하게 궁리하는 척 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에 퍼져나가는 사악한 미소는 전혀 반대쪽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녀가 그 딸기 서프라이즈 쪽을 향해 짖궂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네가 직접 먹어보고 알아내지 그래?"
리들의 두 눈썹이 치켜떠졌다. 그가 그녀를 잠시 빤히 바라보더니, 그 꽈배기 포장지를 능숙하게 풀었다. 두 개의 태피 막대사탕이 드러났다. 하나는 분홍색이고, 하나는 흰색이었는데, 마치 달팽이 쌍쌍바 모양처럼 같이 포장되어 있었다.
비록 헤르미온느가 계속 거닐고 있긴 했지만, 속도를 확 줄이고 팔을 뻗었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분홍색 막대사탕 쪽을 잡은 후, 두 개로 갈라지도록 잡아 당겼다. 그의 손엔 이제 가느다란 하얀 기둥만이 들려 있었다. "좋아, 네가 그걸 먹어, 난 이 분홍색 쪽을 먹을 게. 하나, 둘, 셋..."
헤르미온느와 리들 둘다 각자의 사탕을 입 속으로 탁 집어넣었다. 그러자 친숙하고, 군침이 도는, 천상의 과일 맛이 헤르미온느의 미각을 통해 쫙 터졌다. 그녀가 두 눈을 감고, 그 맛을 음미하며, 리들로부터 쏟아질 비판을 기다렸다.... 그리고, 놀랍지 않게, 곧 바로 말이 터져나왔다.
"맛이야 괜찮지만, 네페르타리. 어떤 흥미로운 깜짝 파티도 일어나진 않는데."
헤르미온느가 어깨 너머로 흘긋 보며, 비교적 가까운 거리 내에 있는 사람은 오직 그녀와 그 뿐이라는 걸 확인했다. 적어도 4분의 1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 뒤의 호그스미드의 거리에서 번쩍이는 망토들과 날아다니는 눈덩이들을 얼핏 보며 순간 미소를 지은 후, 헤르미온느가 그녀의 파란 장갑 한 쪽을 미끄러뜨리듯 벗고 걸음을 멈췄다. "이제 내 손을 잡아."
그녀를 고개를 많이 꺾고 내려다 볼만큼 키가 크지만 호리호리한 슬리데린은 그의 두 눈에 퍼뜩 피어난 의심을 감출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왜?" 그가 방어적으로 물었다. 그의 피부와 헤르미온느의 피부가 신체적인 접촉을 일으켰었던 여러 다른 사례들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기쁨과 환희에 들떠서, 헤르미온느는 그녀가 몇 주 동안 죽도록, 죽도록 묻고 싶었던, 하지만 적당한 기회가 한번도 없어서 묻지 못했던 질문을 하는 것이 최선의 답변이란 걸 깨달았다. 이제, 그녀는 기회를 잡았다.
톰 리들에게 그녀가 지을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웃음을, 그녀의 두 눈이 반짝이는 게 느껴지고, 한쪽 뺨에 보조개가 살짝 파이는 그런 웃음을 지어보이며, 그녀가 한번도 아무에게도 써먹지 않았던, 가장 순진하면서도, 가장 카리스마적이면서, 가장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톰... 너 나 믿지 않니?"
리들의 신중한 표정이 즉석에서 얼어붙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헤르미온느는 솔직히 리들이 방금 그런 것 만큼 그렇게 신속하게 얼굴이 굳어지는 사람은 여태까지 단 한명도 본 기억이 없었다.
적어도 1분동안, 그는 망설였다. 그리고 그들의 숨소리와-그의 억제되고 규칙적인, 그녀의 가볍고 살짝 가쁜-, 조용히 휘이이 부는 산들바람 소리와, 멀리서 들려오는 학생들의 고함소리와, 짹짹 지저귀는 겨울새들 소리와, 이따금씩 나뭇가지에서 땅으로 무겁게 쿵 하고 떨어지는 눈더미 소리만이, 이 순간 둘 모두에게 들려오는 유일한 소리였다.
헤르미온느의 마음이 그녀의 이전 삶들을 향해 떠돌았다. 경이로운 마법사 세계에 대한 일절 지식이 없었던 그녀의 순진무구했던 꼬마 시절들을 지나, 그녀의 머글 학교 문학 수업시간들을 헤맸다. 물론 그 문학 시간들은 어린이들을 위해 단순화된 문학 수업이었지만, 그녀는 서슴없이 그 수업시간에 배웠던 사람이 겪는 네가지 갈등을 암기하고 있었다. 인간 대 자연, 인간 대 사회, 인간 대 인간...
그리고 인간 대 자아.
그녀는 그 중 마지막의 수사적인 질문이 바로 슬리데린 후계자의 심리 상태에 또 다른 충돌을 던졌다는 걸 알았다.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선, 톰 리들은 극도로 개인적인 진술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 하고, 그녀의 손을 잡을것인가, 아니 하고 잡지 않을 것인가?
그가 그녀를 믿나, 아닌가?
천천히, 너무나도 천천히, 그의 회색빛, 꽤뚫는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결코 한번도 떠나지 않은 채, 리들이 허니듀크 봉투를 그의 망토 주머니에 집어넣고는, 그의 오른쪽 장갑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당겨서, 하나하나씩 벗기 시작했다. 그가 너무도 오랜 시간을 끌었기에, 헤르미온느는 그가 손가락 하나마다 그가 무슨짓을 하고 있는 건지 자신을 반복적으로 다시 납득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 궁금했다.
그렇지만 마침내 그 어두운 색 장갑이 다 벗겨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기대에 찬 두 눈을 강렬히 응시하며, 리들이 그의 손을 뻗었다.
헤르미온느는 단 1인치도 움직이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가 그녀에게 와닿자, 그녀의 숨결이 놀라울 정도로 더욱 빨리, 더욱 맹렬히 터져나왔다. 그의 손가락이, 길고, 마치 피아노 연주자 같은 모양의 손가락이 아주 잠깐 머뭇하며 맴돌더니... 이윽고 포기하고 그녀의 부드러운 손가락 끝을 스쳤다.
리들이 그녀에게 닿은 그 즉시, 헤르미온느가 굳게 그녀의 손으로 그의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딸기 서프라이즈가 작동하길 기다렸다. 그 사탕은 실망을 안겨주는 법이 없었다.
거의 즉시, 그의 두 눈이 꽉 감겼고, 미세하고, 거의 눈에 띄지 않은 경련이 그의 몸을 뚫고 지나갔다. 마찬가지로 잽싸게, 그의 눈꺼풀이 다시 파닥하고 떠졌고, 그가 약간 방향 감각을 잊은 듯 보이며, 그의 손이 그녀의 손을 더욱 꽉 잡았다. "뭐지..." 그의 흔들리는 시선이 마침내 그녀에게 와닿았다. 그가 옆에 그녀가 서있는 걸 보고 거의 깜짝 놀란 듯 보였다. "너한테서 온 거였어?"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잔뜩 구름이 뒤덮인 침울한 하늘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자신의 콧등에 내려앉은 몇 개의 눈송이를 가볍게 쳐내며, 그녀가 호기심어린 말투로 물었다. "뭘 봤니?"
리들이 먼 숲을 흘긋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은 어느 특정한 곳을 응시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가 숨을 삼켰다. "네가... 보였어. 그런데 넌 더 어린 모습이었어. 훨씬 더 어린 모습이었고, 그리고 어떤 여자가 있었는데 꼭... 생김새로 봐서는... 네 어머니였나?"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그녀의 어머니가 항상 태닝을 즐겨하셨단 사실이 고마웠다. 그녀는 그 딸기 서프라이즈 태피가 리들에게 보여준 그녀의 행복한 기억이 뭐였는지 대충 짐작이 갔지만, 그녀는 그에게 계속하라고 신호했다.
"네 어머니와, 그리고, 장소가 굉장히 복잡한 걸로 봐서는, 네 전체 친척들이 거기에 있었어. 내 추측으로는... 크리스마스처럼 보였고..." 리들이 그의 밤색 눈썹을 찌푸렸다. "너희 가족은 장식을 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음식을 먹고... 너희 같은 사람들이 파티에서 하는 다른 그 밖의 일들을 하고 있었어..."
'너희 같은 사람들...' 순수혈통을 말하는 거겠지. 헤르미온느는 그의 마지막 언급에 자그맣게 자존심이 담긴 콧방귀를 뀌었다. 그가 사실을 알기만 한다면! --와! 아직도 여기에 있네!
기쁨에 들떠서, 헤르미온느가 가까운 거리에 세워진 흰 눈으로 뒤덮인 작은 망루를 살펴 보았다. 그 망루에 칠해진 색이 하얀색이었기 때문에 주변 경관이 교묘히 그 존재를 숨겨주고 있었다. 예전엔- 어, 미래엔- 그 망루가 무너지고, 먼지투성이에, 거미줄이 쳐진 상태로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의 가장 끝을 둘러싼 울타리로 쓰였었는데. 지금은, 그러나,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은 아직 건축되지 않은 상태였고, 대신 망루는 눈부시게 깨끗한 채로, 새 것이었고, 텅 빈채로, 어서 오라는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리고 완벽히-
"물기 하나 없이 눈보라 피하기 안성맞춤이네." 그녀가 꿈결같은 어조로 말한 후에, 그녀가 마지막 생각을 큰 소리로 말한 것을 깨닫고는 당황해서 입을 가렸다.
어리둥절해서, 리들이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가, 그 망루를 발견했다. "그 의견엔 간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네페르타리."
그건 헤르미온느가 필요했던 유일한 격려의 손짓이었다. 그녀가 원래 짓고 있던 미소가 단 한번도 얼굴에서 완전히 떠나지 않았고, 잡고 있는 손이 누구의 것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서 재빨리 손을 놓기 전에, 그녀가 그의 손을-여전히 그녀의 손을 잡고 있던- 잡아 당기며, 그 지붕이 덮인 벤치 쪽으로 난 울퉁불퉁한 길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난 절대 그 때 크리스마스를 잊지 못할 거야. 그저 상상해봐. 네말이 맞았어. 그 때 우린 전체 친척들이 다 모였었어. 우리 모두 모여서, 한 프랑스 샤토 성을 일주일간 임대 했었거든.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 다시는 절대 그렇게 모이라고 해도 난 못할 거야. 아빠랑, 다른 친척 아저씨들이 '미지의 나라로의 모험'을 떠나기로 합심하시고는, '옛날 방식'으로 크리스마스 나무를 잘라야 한다는 거야. 그래서 다들 거대한 도끼랑, 톱 같은 걸 들고 성 근처 숲으로 곧장 가셔서는, 몇시간 후에 이 엄청나게 꼭대기가 까마득한 나무를 끌고 오셨더랬지. 샤토 1층 로비 마루에 세우니까 꼭대기 천장까지 간신히 맞을 정도였다니까."
헤르미온느가 낮게 중얼거리다가, 피식 웃고는 나무토막 하나를 툭 발로 차서 반대편 반미터 높이로 쌓인 눈 쪽으로 떨어뜨렸다. 성가신... 눈 같으니...
단호한 표정으로, 그녀가 앞길을 치우며 망루를 향해 이리 저리 장애물을 피해 걸었다. 누가 대체 망루를 길에서 이렇게 멀리 떨어진 구석에 세워놓은 거람?
"아무튼, 말했듯이, 전체 친척들이 모였고." 그녀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우리가 크리스마스 이브에 그 모든 휴일 장식들을 다 걸었다가, 크리스마스 오후에 치우는... 현명하지 못한 관습을 가지고 있긴 해. 그래서... -너 얼굴에 그 능글맞은 미소 지워라. 내가 그 바보같은 전통을 만든 사람은 아니니까!- 그래서 그 전체 장소가 24시간 동안 아마겟돈으로 변했어. 암튼, 아빠가 마침내, 그 나무를 세우는데 성공을 하긴 하셨는데, 아빠가 처음 그 나무를 베어왔을 때 그 나무 안에 이미 살고 있던 다람쥐 가족들에게 집을 가져가도 되겠냐고 허락을 받는 걸 잊으셨던 거야."
그녀가 뒤에서 그가 의심스러운 말투로 묻는 소리를 들었다. "진담이냐?"
그녀가 다시금 그를 어깨너머로 흘긋 바라봤을 때, 그녀는 그가 그녀가 내뱉은 모든 단어 하나하나를 집중해서 듣고 있는 듯 보이자 깜짝 놀랐다. 그의 입이 실제로 놀랐다는 듯 조금 벌어져 있었다.
그녀가 소리내 웃었다. "오, 기다려봐, 갈수록 가관이니까." 그녀가 말을 계속 잇기 전에, 마지막으로 망루를 향해서 훌쩍 뛰었다.
멀린님, 우리가 해냈어! 즉시, 헤르미온느는 그 은신처의 바람막이 능력이 그 효과를 발하는 걸 느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안도감에, 그녀가 두 팔을 벌린 채, 빙그르르 돌았다. 이윽고 어지러워서 눈이 하나도 쌓이지 않은 벤치 하나에 완전히 녹초가 되어 털썩 앉을 때까지.
어두운 머리 꼭데기엔 이제 가벼운 눈송이가 자욱한 채로, 리들이 뒤에 가까이 따라오다가, 작게 피식 웃었다. 헤르미온느는 그가 잠시나마 추위와 눈보라를 피할 수 있어서 그녀 만큼이나 행복할 거라고 추측할 따름이었다... 물론 빙그르르 돈 것은 빼고.
"아무튼, 그 작은 쥐새끼들이 성을 아주 난장판으로 난리를 쳐놓기 시작했어- 아아아, 우리 아빠가 걔들을 얼마나 죽이고 싶어 하셨던지." 그녀가 그 기억에 혼자 미소를 짓다가, 하품을 하며 망루 지지대 중 하나에 머리를 뒤로 기댔다. "물론, 난 고작 여덟 살이었기 때문에, 내 눈엔 걔들이 내가 태어나서 본 것들 중 가장 귀여운 애들이고 마냥 예쁜 거야. 그래서 아빠가 걔들을 내쫓는 동안 난 그 중 내가 갖고 싶은 한 마리를 이미 골라놓은 상태였지. 그래서, 아빠가 막 스ㅋ-지팡이를 휘둘렀을 때 난 당연히 너무나 속상해서 마구 울음을 터뜨렸어."
그녀의 거의 삐져나온 말실수를 눈치채지 못한 채, 리들이 다시금 피식 웃고는, 그녀의 정 반대쪽에 있는 지지대에 몸을 기댔다. "당연히" 그가 그녀의 말 중 그 부분을 따라한 후, 지팡이를 꺼내 손에 쥐고는 톡톡 치며 간단한 온기 마법을 중얼거렸다.
"당근이지. 그때 난 당연히 그 일로 아빠한테 일주일 동안 한마디도 안 걸었는 걸. 난 심술쟁이 꼬마였거든. 어쨌거나. 점점 갈수록, 거의 다람쥐들이 어질러 놓은 것 보다는 아빠가 망가뜨린 게 훨씬 더 많아져 버린거야." 그가 조만간 벤치에 앉을 계획은 있는지 궁금해 하면서, 헤르미온느가 말을 멈추고 그 키 큰 슬리데린을 올려다보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그녀의 입에 맴도는 단어들이 미세하게 차츰 망각의 세계로 사라졌고, 그녀의 입이 반쯤 멍하니 벌어졌다.
톰 리들이 웃고 있었다. 진짜 웃음을 웃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전에 그가 성의 없는 피식 웃음과 희미한 미소를 지었을 때는 단 한번도 보인 적이 없었던, 몇 개의 선이, 그의 두 눈가 주변에 맺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돌연 나타났던 것 만큼이나, 돌연 그 미소는 사라졌고, 리들이 한숨을 쉬었다. 자신의 망토 어깨에 쌓였던 눈을 털어내며, 그가 망루의 지름을 채 두 걸음도 안되게 가로질러서 그녀 옆에 놓여있던 벤치 위에 털썩 앉으며, 자신의 두 손을 빤히 바라보았다. 한 손은 검은 장갑에 싸여있었고, 다른 손은 창백한 맨 살을 드러낸 채였다.
헤르미온느는 자신을 추스린 후, 소망했다. 기도했다. 오늘 전체 오후가 헛된 시간이 아니었기를. 그녀가 자신을 내보여준 만큼 그도 보답으로 적어도 일시나마 어느 정도는 그의 일부를 내어주기를. 어서, 리들... 뭐라도 말해봐...
"그런 기억들이 나도 있었다면..."
게임에서 빠져나와 관객 역할을 바꿀 때라는 걸 깨닫고는, 헤르미온느가 상체를 숙이고 무릎 하나 위에 머리를 기대며, 단지 그를 조용히 응시했다.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얼굴에 동정심이 이는 걸 느꼈다.
"가끔은" 리들이 낮고,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목소리로 계속했다. "가끔은.... 난 내 인생이 싫다. 나란 사람의 과거가, 현재가 싫어. 그래서... 난.... 난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보다 더 통제할 수 있는 사람. 인생에서 원하는 것은 확실히 가질 수 있고, 아무도 업신여기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있는 사람...."
그가 눈을 돌리고 눈덮인 경치를 바라보았다. 그의 턱이 눈에 띄게 꽉 다물어졌다.
헤르미온느는 그녀의 뱃속이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그가 이제 곧 조만간 어둠의 마법에 대한 설교를 시작할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눈덮인 부츠를 우두커니 내려다 보기 시작했을 때, 그가 말을 이었다. "내 능력으로 될 수 있다는 걸 내가 아는 그런 사람. 거기에 의심은 없어. 하지만...내가..."
슬리데린의 후계자가 주저하자, 봄날 같은 희망이 헤르미온느의 정신에 물밀듯 파고들었다. 그녀는 부츠에 눈을 떼고 그의 얼굴을 다시 응시했다.
그가 흥미로운 말을, 한층 더 조용한 어조로 내뱉었다. "내가 되고 싶은 건지 전적으로 확신이 들지 않는 그런 사람이야, 이제는."
그가 마치 자신이 너무 많은 말을 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는 듯 갑자기 말을 멈췄다. "설명하기 다소 어려워." 그가 중얼거렸다. 그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자, 무심코 머리에 쌓였던 눈꽃들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작은 샤워 줄기처럼 날아갔다.
리들의 몹시도 개인적인 고백에 헤르미온느의 벙찐 눈이 커다래졌다. 그러다 그녀가 재빨리 눈을 깜박이며 다시 초점을 밝게 한 후, 분노와 좌절과, 극도의 우울이 드러난 그의 옆얼굴을 살폈다.
그녀의 마음이 신기록을 수립할 속도로 내달리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 말이 여전히 그녀의 마음속에서 고장난 레코드판처럼 울려퍼졌다. '내가 되고 싶은 건지 전적으로 확신이 들지 않는 그런 사람이야, 이제는.' ...'내가 되고 싶은 건지 전적으로 확신이 들지 않는 그런 사람이야, 이제는...' 하지만 왜 이제야? 왜 좀 더 진작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리들" 헤르미온느가 그녀의 과도하게 분석적인 두뇌를 확 꺼버리기 위해 자신을 콱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무엇보다 간절히 들면서, 서서히 말문을 열었다. "네가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을 통제할 수는 없어. 그건 가능하지가 않-"
"널 봐!" 그가 예기치 않게 버럭 소리치며, 홱 몸을 돌리고 그녀를 비난의 시선으로 응시했다.
헤르미온느가 다급하게, 무의식적으로 그로부터 몇 인치 더 떨어지게 벤치 아래로 미끄러지듯 자리를 뒤로 옮겼다.
"네 잘난 삶을 좀 보라고! 네 완벽한 가족을, 네 행복한 작은 친구들을..."
돌아서는 그의 얼굴이 쓰라린 표정으로 험악해졌고, 그가 냉혹하게 내뱉았다. "넌 많은 걸 알고 있어, 네페르타리. 그걸 부인하진 않겠어. 하지만 넌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이 끔찍한 것이 얼마나 지옥 같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넌 단 한줌도 이해조차 할 수 없어-"
"우리 부모님 돌아가셨어." 헤르미온느가 조용히, 차분히 말했다. 그리고 기다렸다.
"-넌 그게 어떤 건지 심지어- 뭐?" 그가 갑자기 우뚝 서는 바람에 자신의 걷던 힘에 못 이겨 거의 넘어질 뻔 하며 갑자기 물었다.
그는 자신의 분출에 여전히 살짝 숨이 찬 상태였다. 그가 날카롭게 고개를 휙 돌리고 다시 그녀를 빤히 보았다.
"우리 부모님, 내가 열 여섯 살 때 돌아가셨어." 그녀가 입이 타는 걸 느끼며 참을성 있게 반복했다. "내가 15분 늦게 집에 들어가는 바람에."
리들의 두 눈썹이 위로 치켜 올라갔다. 그녀가 확실히 그의 경계를 완벽히 무너뜨린 것 같았다. 그는 심지어 그 격앙된 놀란 감정을 숨기려고 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얼굴 곳곳에 마찬가지로 -죄책감?-이 퍼져나갔다. 그가 뭔가 그럴듯한 말을 떠올리는 듯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가, 다시 벌렸다. "부모님이... 그랬어?" 그가 모호하게 물었다.
헤르미온느가 그에게 작고 공허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그들의 대화가 결국엔 이 방향으로 흐르리라는 걸 알고 있었더랬다. 그녀의 세상을 하직한 가족이 종국엔, 어떤 지렛대가, 톰 리들과 그녀에게 유사한 배경으로 연결끈이 이어지는 그런 정보가 될 것이란 걸 깨닫고 있었으니까. 뭐, 꼭 같지는 않아도 어느 정도까지는 유사한.
그렇지만, 이제, 이제 그걸 실제로 논의할 시간이 정작 되고보니...
엄마! 아빠! 어디 계세요? 그녀의 마음이 지금 바로 이 순간 만큼은 한심스럽게, 절망적으로 울먹였다. 그 어떤 것 보다도, 헤르미온느는 지난 2년 반 동안 바래왔던 그 어떤 것 보다도 그녀의 부모님을 원했다.
"어." 그녀가 결국 리들이 조용히 대답했다. "그랬어."
"하지만..." 그 슬리데린이 그녀가 방금 그에게 한 말을 삼키는 것이 여전히 몹시도 힘들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럼 1, 2년 전 밖에 안된 일이란 말인데."
"3년 전이야, 실은." 헤르미온느가 무심코 읇조리며, 제이콥슨 위즐리와 필리스 하디만과 유난히 닮아보이는 한 쌍의 학생들이 손을 잡고 약간 먼 곳에서 길을 따라 춤추듯 내려가서, 결국 아무도 없는 대로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버려진 작은 오두막으로 쑥 들어가는 걸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가 건성으로 피식 웃었다. 쟤네들 어쩜.
"너 열 아홉 살이야?" 리들이 물었을 때, 그의 예의 그 평소 초-차분하고, 전지전능했던 목소리가 한층 더 놀라서 어리둥절한 감정을 담고 있는 걸 느끼고는, 헤르미온느가 아차 싶어서 깜짝 놀랐다.
"어, 지난 9월에..." 그녀가 말끝을 흐렸다가, 제이콥슨과 필리스가 사라진 곳에서 눈을 떼고는 등을 폈다. "리들, 부디, 부디 내 말 잘 들어줘. 정말 중요한 얘기니까." 그녀가 벤치 위에서 앞으로 움직이며 슬리데린 후계자의 경직된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도록 몸을 돌렸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얼굴과 그의 얼굴 사이가 12인치도 되지 않는다는 사실 마저 개의치 않았다.
"나" 헤르미온느가 신중히 단어를 고르며 조심스럽게 시작했다. "내 친 아버지가 날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어떤 기분인 건지 안다고 말할 순 없어." 그녀가 리들의 장갑이 벗겨진 손이 벤치 등을 관절히 하얗게 튀어나올 때까지 움켜쥐는 것을 눈치챘다. "또 난 내 어머니가 나에게 저주를 걸었다고 말할 수도 없어." 그의 얼굴에서 모든 혈색이 빠져나갔다. "하지만 난 내 부모님을 아주, 아주 많이 사랑했거든, 리들, 아주 많이, 그런데 나..."
그녀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고, 끔찍스러울 만큼 창피하게도, 그녀의 두 눈이 아직 흘러내리지 않는 눈물로, 뜨겁고 강력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격렬히, 그녀가 그 감각을 몰아내며, 목메인 음성으로 계속했다. "나 두 분이, 누워있는 걸 봤어. 숨이 끊긴 채로, 그 것도 우리 집 안, 우리 집 거실 바닥에서. 그리고 아직도 체온의 온기가 남아있었어, 아직도...아직도-"
그녀의 목소리가 끊기더니, 그녀의 목이 콱 잠겼다. 별안간 울보는 되지 않겠다고 자신에게 맹세하며, 그녀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눈물이 다시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녀는 이 일을 해쳐나갈 것이었다. 그녀는 늘 그랬으니까.
숨을 훅 빨아들이며, 그 갈색머리 소녀가 더 강하지만 그에 비례해 공허한 목소리로 계속했다. "그리고 난 그 모든 것이 나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안고 살아야만 해. 만일 내가 집으로 가는 길에서 지체하지만 않았더라면, 만일 내가 커피 한잔을 위해 가게에 들리지만 않았더라면, 내가 내가 만일 거기 직원과 그렇게 오래 수다만 떨지 않았더라면, 만일 내가 다른 더 빠른 집으로 가는 지름길을 택했더라면... 뭔가라도 할 수 있도록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그래, 미온느, 뭔가라도. 뭘 할 수 있었는데, 네가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어둠의 마왕을 상대로 싸워서, 모든 목숨을 구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해?' 까마득한 것만 같은 몇 년 전 론이 꾸짖으며 했던 말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돌았다. '미온느, 네가 그 모든 것들을 한 것이 다행인 거야... 아니었으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너와 지내지 못했을테니까.'
"그리고, 네가 알아줬으면 좋겠어." 그녀가 가차없이 덧붙였다. "그것 역시 견뎌기엔 지옥 이란 걸."
어쩌면 그녀의 상상일 지도 몰랐지만, 헤르미온느는 실제로 리들의 폭풍빛 두 눈이 그녀를 응시함에 따라 점차 부드러워지는 걸 보았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그가 그의 시선을 다시 자신의 손으로 돌렸다. "...우리 둘 다 각자의 방식으로 모든 걸 잃은 것 같다."
헤르미온느가 한 방울 눈물이 그녀의 눈에서 탈출해서 한 쪽 뺨을 타고 흘러내리다가 도중에 뺨에서 얼어붙는 것이 느껴지자, 재빠르게 눈을 깜빡거리고는 신속히 망루의 천장을 흘금 올려다 보았다. "그래."
두 회장 소년과 소녀가 침묵에 빠졌다. 그러나 곧 헤르미온느는 리들의 눈이 다시 그녀에게 와닿는 것을 느꼈다. 그가 중얼거렸다. "네페르타리,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였어?"
이 전체 상황의 잔인한 아이러니에, 뚜렷하고, 등골이 오싹한 한기가 그녀의 척추를 타고 얼얼하게 흘러내렸다. "두분 모두 살해당하셨어..." 그녀가 자신의 차가운 입술을 혀로 축였다. "세상에서 가장 악한 사람에게."
리들이 조용히 앉아서 생각에 잠기다가 이렇게 물었다. "그린데왈드?"
"누군진 중요하지 않아." 헤르미온느가 이 대화를 명확한 안전 지대로 옮겨놓고 싶어서 확고하게 말했다. "중요한 건- 이 전체 얘기의 포인트는 내가 지독하게 주제를 벗어나긴 했지만... 리들" 그녀가 자신이 시작했던 걸 끝낼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마음을 차분히 하며 다시 시작했다. 그녀의 두 눈이 격려의 눈빛으로 밝게 빛났다. "넌 내가 가진 것들과 같은 기억들을 몸소 만들 수 있다는 거야. 네 삶에 어떤 일이 있어났었든 간에, 넌 할 수 있어."
잠시동안, 그가 두 눈을 감았다. 그의 무릎에 놓은 그의 두 손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고개를 숙이고 마치 동의하지 않는 듯 건성으로 고개를 내저으며, 그 슬리데린이 중얼거렸다. "넌 참 이상주의적인 그림을 잘도 그린다, 네페르타리. 하지만 넌 조금은 너무 늦게 날 찾아왔어, 유감스럽게도."
헤르미온느가 그의 수그린 시선과 맞추기 위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의 눈을 볼 수 있도록 왼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그녀가 그를 그렇게 쉽게는 놓아주지 않을 작정을 하며, 따스하고, 진정어린 눈길로 그의 눈길을 찾았다.
"톰" 헤르미온느가 섬세하고도, 거의 숨이 찬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가 그를 이름으로 부를 때면, 언제나 그랬듯이 그가 그녀를 바라보리란 걸 알았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거야."
그 순간, 그 단 한 찰나의 순간, 헤르미온느는 톰 리들의 냉담한 회색빛 눈동자의 깊숙한 곳에서 일말의 실낱같은, 간절한 희망의 빛이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돌연, 그가 작고, 급작스러운 비명을 내뱉는가 싶더니, 입술을 꽉 깨물고, 앞으로 구부러졌다. 한 손으로 그의 배를 움켜쥔 채, 다른 손으로 벤치의 바닥을 짚었다. 몇초도 채 지나지 않아서, 그의 얼굴이 완벽히 잿빛으로 변해갔고, 그가 거의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하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오, 맙소사.
뭔가의 기괴한 이유에선지-기괴했다. 왜냐하면 그녀가 다루고 있는 이 자는 미래에 그녀의 부모님을 살해한 잠재적인 살인자였으니까- 헤르미온느는 그녀의 이미 울렁거리는 뱃속의 밑바닥이 쿵하고 내려앉는 걸 느꼈다. 이렇게 지독하게 아파하는 누군가를-그래, 비록 그 누군가에 톰 리들 역시 포함된다고 할지라도- 본다는 것에, 덜컹 가슴이 가라앉았다.
비록 그녀는 정확히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의 어깨를 미친 듯이 부여쥐고 그를 일으키려고 노력하며, 자동적으로 다급히 물었다. "톰! 뭐가 잘못된 거야?"
대답 대신, 제 2의 발작이 그의 온몸을 찢어놓으며 관통하자, 그녀는 톰 리들의 엄청난 고뇌에 휩싸인 회색 눈동자에 담긴 고통을 실제로 보았다.... 그리고 이번에 의식을 잃은 사람은 헤르미온느가 아닌, 리들이었다.
레이디 문글로우님의 작가 주: 추신-감상글로 독자들이 물어오셔서 확실히 설명해 드리자면, 톰은 그가 좋아하는 사람(...예를 들어 헤르미온느)에게 강하게 그 감정을 느낄 때 마다, 아니마 공격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공격은 점점 더 공격적으로 악화될 겁니다. 저주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갈 때까지요.
이 글의 저작권은 원작자이신 Lady Moonglow 님과 번역자이신 모건르페이 님께 있습니다.